이 사건은 한 개인의 타락이라기보다, 종교적 권위가 비판받지 않는 영역으로 신성화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말까지 방글라데시 선교지에서 활동한 한 미국 개신교 선교사의 연쇄 성범죄는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형성된 권력 구조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다.
가해자인 **Donn Ketcham**은 1961년부터 1989년까지 말룸가트 선교병원에서 외과의사 선교사로 활동했다. 그는 의료 전문성과 종교적 헌신이라는 이중의 권위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 선교 공동체 안에서 그는 신뢰받는 의사이자 ‘하나님의 사역자’로 인식되었고, 바로 그 지점이 범죄를 가능하게 한 토대였다. 진료를 빙자한 신체 접촉, 마취제를 이용한 성폭행 정황 등은 단순한 윤리적 실패가 아니라, 권위가 통제받지 않을 때 얼마나 쉽게 악용되는지를 보여준다.
2016년 독립조사 보고서는 최소 22명의 피해자를 확인했다. 피해자 다수는 선교사 자녀들이었고, 일부는 아동이었다. 이들은 폐쇄적인 선교 공동체 안에서 자랐고, 가해자는 그 공동체의 핵심 인물이었다.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곧 공동체 전체를 흔드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구조였다.
문제는 범죄 그 자체뿐 아니라, 소속 기관의 대응이었다. ABWE는 공식적으로는 엄격한 기독교 윤리를 표방했지만, 실제 사건이 드러났을 때 선택한 것은 형사 고발이 아니라 내부 수습이었다. 1989년 14세 피해자의 폭로 이후 가해자는 미국으로 송환되었지만, 외부 수사나 공개적 책임 추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책임을 일부 전가하는 서술이 등장했고, 사건은 “부적절한 관계”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축소되었다. 종교 공동체의 명예와 평판이 피해자의 권리보다 우선시된 셈이다.
무신론적 관점에서 보면, 여기에는 종교적 언어가 가진 면책 효과가 작동한다. ‘선교’, ‘사명’, ‘헌신’과 같은 개념은 구성원에게 도덕적 우월성을 암묵적으로 부여한다. 그러나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확신은 오히려 자기 성찰과 외부 감시를 약화시킬 수 있다. 실제로 1980년대 중반 이미 경고 신호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문서가 폐기되었다는 증언은 조직이 진실보다 내부 결속을 우선시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2011년 피해자들이 온라인에서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 사건은 사실상 묻혀 있었다. 종교 공동체 내부에서는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가 외부 공론장에 의해 비로소 드러난 것이다. 이는 도덕의 근거가 종교적 신념에만 의존할 경우, 내부 자정 능력이 충분히 작동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사건은 신앙이 곧 윤리적 안전장치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드러낸다. 오히려 신성화된 권위, 폐쇄적 구조, 조직 보존 본능이 결합하면, 피해자는 침묵을 강요받고 가해자는 보호받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개인의 신앙 유무가 아니라, 권력이 투명하게 통제되는가, 피해자 중심의 정의가 작동하는가에 있다.
이 사례는 종교 조직이 도덕의 독점적 담지자임을 자처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을 보여준다. 초월적 권위에 기대는 대신, 외부 감시와 세속적 법 체계, 투명한 제도적 장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