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단순한 복지 비리도, 일부 개인의 일탈도 아니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국가 권력, 종교 권위, 그리고 사회적 무관심이 결합했을 때 인간의 존엄이 얼마나 쉽게 짓밟힐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형제복지원은 처음에는 고아원이었지만, 1975년 부산시와 계약을 맺으며 ‘부랑인 수용시설’로 변했다. 1980년대 군사정권은 국제행사를 앞두고 도시 미관을 정비한다는 이유로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노숙인·고아·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무차별적으로 끌려왔다. 법적 절차도 없이 감금된 사람들은 사실상 사회에서 격리되었다.
그 시설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복지기관”을 자처했다. 운영자 박인근은 장로교 계열 교회의 장로(권사)로 지역 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신앙적 직함과 도덕적 수사는 폭력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그것은 비판을 차단하는 방패처럼 기능했다.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시설 안에서는 신앙행사가 강요되었고, 복종과 순응이 미덕처럼 주입되었다. 하지만 내부 현실은 폭력과 착취였다. 군대식 계급 구조 아래 일부 수용자에게 권한을 주어 다른 수용자를 감시하고 폭행하게 했으며, 어린아이들까지 강제노동에 동원했다. 목공·봉제·금속 작업 등에서 임금 없이 일하게 하며 이익을 창출했다.
이는 자선이 아니라 체계적인 강제노동이었다.
폭행과 고문은 일상적이었고, 성폭력도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1975년부터 1987년 초까지 공식 사망자만 513명, 이후 드러난 수치를 합치면 최소 55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수백 명이 죽어갔지만, 그 공간은 오랫동안 “복지시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침묵이었다. 지역 교계 단체들은 시설의 실상을 알았음에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종교적 권위와 자선의 이미지가 의심을 약화시켰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감시를 무디게 만들었다.
신앙은 도덕을 보장하지 않았다. 직함은 양심을 증명하지 않았다.
1987년 수사가 시작되었지만, 군사정권은 국제적 이미지 훼손을 우려해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결국 핵심 책임은 온전히 규명되지 못했고, 운영자는 불법감금 혐의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수백 명이 죽었지만, 시스템은 거의 유지된 채 넘어갔다.
이 사건은 “선의”라는 말이 얼마나 쉽게 남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난한 사람을 돌본다는 종교적 언어는 의심을 차단했고, 도덕적 권위를 주장하는 위치에 있던 사람은 오랫동안 검증받지 않았다. 신앙은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든다는 전제가 있었지만, 현실은 그 반대를 증명했다.
결국 인간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초월적 믿음이 아니라, 투명한 제도와 비판적 감시, 그리고 권력을 의심하는 태도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신앙의 유무와 무관하게, 권력이 통제받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신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인간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