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비 재커라이어스 사건은 종교가 내세우는 도덕성과 영적 권위가 얼마나 쉽게 허상으로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국제적으로 명망 높은 기독교 변증가로 추앙받던 라비 재커라이어스는 수십 년 동안 복음주의권에서 지성과 신앙의 상징처럼 소비되었지만, 그의 실체는 세계적 명성과 종교적 권위를 이용해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한 가해자였다. 그는 기독교를 변호한다는 이름으로 세계를 누비며 존경과 헌금을 끌어모았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국제 사역단체 RZIM을 통해 거의 비판받지 않는 권력을 누렸다. 그러나 2020년 5월 그가 사망한 뒤 폭로된 사실들은, 복음주의가 떠받들던 “영적 거장”의 얼굴 뒤에 얼마나 추악한 이중성이 숨어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21년 초 공개된 독립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라비 재커라이어스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국내외의 수많은 여성들을 상대로 성적 학대와 착취를 저질렀고, 특히 마사지 치료사들을 주요 표적으로 삼아 미국과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범행을 이어갔다. 그는 아틀란타의 공동소유 스파를 거점처럼 활용하며 여성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 뒤, “사역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한다”, “이것은 신앙의 선물이다” 같은 종교적 궤변으로 성행위를 강요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단순한 개인 비행이 아니다. 종교적 언어가 위로와 진실의 도구가 아니라, 욕망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영적 지도자”라는 지위는 윤리의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범죄를 더 오래 숨길 수 있게 해주는 보호막이었다.
더 역겨운 부분은 그가 피해자들에게 제공한 경제적 지원마저 착취의 도구였다는 점이다. 일부 여성들은 주택, 학비, 생활비 등의 지원을 받았지만, 그 돈은 그의 사적 재산이 아니라 사역헌금에서 나온 것이었다. 다시 말해 신자들이 하나님과 선교를 위해 바쳤다고 믿었던 헌금이, 실제로는 지도자의 성적 착취를 유지하는 자금으로 흘러 들어간 셈이다. 그 대가로 피해자들은 지속적인 성관계를 강요받았고, 한 피해자는 이를 사실상 강간이라고 증언했다. 라비는 범행 후 함께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자고 말하며 왜곡된 영성을 이용해 죄책감을 주입했고, 자신의 명성이 손상되면 수백만 영혼이 지옥에 갈 것이라는 식의 협박으로 침묵을 강요했다. 이쯤 되면 종교는 도덕을 가르치는 제도가 아니라, 죄책감과 भय, 구원 서사를 이용해 피해자를 통제하는 정교한 권력 장치처럼 보일 뿐이다.
이 사건이 더욱 본질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종교 조직이 진실보다 체면과 권위를 먼저 지킨다는 점이다. 라비 재커라이어스 개인의 범죄는 그의 가족과 측근들이 장악한 RZIM의 폐쇄적 구조 속에서 오랫동안 은폐되었다. 그는 생전에 절대적인 존경을 받는 변증가였고, 자신의 딸 등을 요직에 앉혀 사실상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는 구조를 만들었다. 2017년 캐나다 여성과의 부적절한 메시지 스캔들이 터졌을 때조차, RZIM은 진실을 밝히기보다 피해 여성 측을 공격하며 라비를 두둔했다. 복음주의권이 자랑하는 진리와 회개의 언어는 이 순간 너무도 손쉽게 침묵과 방어, 조직 보존의 언어로 바뀌었다. 결국 그들이 수호한 것은 신앙의 진실이 아니라, 지도자의 명성과 조직의 브랜드였다.
그가 죽은 뒤에야 RZIM 이사회가 독립 조사에 착수하고, 2021년 2월 “잘못된 신뢰와 관리 부실”을 인정한 것도 도덕적 각성이라기보다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나온 사후 수습에 가깝다. 이후 대폭적인 직원 해고, 모금 중단, 활동 축소, 설립자 이름 폐기, 피해자 지원 발표 등이 이어졌지만, 이런 조치는 이미 조직의 도덕적 파산이 공개된 뒤에 나온 것이었다. 결국 RZIM의 몰락은 한 단체의 불운이 아니라, 유명 설교자와 스타 변증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복음주의식 사역 모델이 얼마나 취약하고 부패하기 쉬운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내부 견제도 없고 외부 감사도 약한 가족 경영식 종교 조직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명분을 입을 때, 그곳은 너무 쉽게 사유화된 권력 구조로 변질된다.
이 사건은 또한 성범죄와 은폐가 특정 교파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종교계는 종종 이런 문제를 가톨릭만의 병폐처럼 말해 왔지만, 라비 재커라이어스 사건은 개신교, 그것도 복음주의 진영 역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스스로를 더 성경적이고 더 도덕적이라고 자부하던 집단 안에서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는 점은, 종교적 자기확신이 얼마나 위험한 자기기만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피해자들 상당수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고, 가해자가 바로 그 신앙심을 이용해 범죄를 정당화하고 침묵을 강요했다는 사실은 특히 뼈아프다. 신앙은 그들을 보호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 신앙심이 착취의 통로가 되었다.
복음주의권이 뒤늦게 상훈을 철회하고, 라비를 “영적 스승”으로 추앙했던 이들이 충격과 수치를 말하며, 일부 RZIM 출신 인사들이 지도자 우상화를 회개한다고 밝힌 것은 결국 한 가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사람을 신뢰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거의 신성한 존재처럼 떠받들었다. 그리고 종교는 그런 우상화를 막기는커녕 오히려 더 쉽게 만들어 주었다. 카리스마, 간증, 설교, 경건한 이미지, 선교의 명분은 모두 검증을 면제받는 장치로 기능했고, 그 결과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묵살되었다.
결국 라비 재커라이어스 사건은 한 유명 기독교 지도자의 추락이 아니라, 종교가 내세우는 도덕적 우월성과 영적 권위라는 신화가 얼마나 허약한지 보여주는 사건이다. 신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고 해서 더 선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바로 그 이름이야말로 가장 오래 범죄를 숨기고 피해자를 침묵시키는 데 이용된다. 이 사건은 복음주의가 말해 온 진실, 거룩, 도덕, 회개라는 언어가 실제로는 얼마나 쉽게 권력, 위선, 자기보존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폭로했다. 결국 무너진 것은 한 사람의 명성만이 아니라, 그를 영적 권위로 포장하고 떠받든 종교 구조 전체의 신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