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8일, 제267대 교황으로 미국 출신의 레오 14세가 선출되었다. 이는 교회 역사상 주목할 만한 전환점이지만, 동시에 가톨릭의 정치적 중립성과 영성 중심의 지도력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신학적으로 교황은 ‘봉사의 종(servus servorum Dei)’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교회 구조는 그 역할이 현실 정치와 국제 권력구도 속에서 크게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드러난 **바티칸 은행(IOR)**의 각종 금융 스캔들은 가톨릭 교회의 도덕적 권위에 심대한 도전을 제기해 왔다. 종교라는 제도와 신성성의 이름으로 보호받아온 영역이, 실상은 투명성 결여와 제도적 책임 회피로 일관된 점은 학문적으로도 비판적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 바티칸 은행: 성직의 도구인가, 구조적 부패의 산물인가?
1942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설립된 바티칸 은행은 전 세계 가톨릭 공동체의 자산을 관리하고 선한 목적의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기관은 ‘하느님의 사업을 위한 도구’라는 정체성을 잃은 채, 외부 감시가 차단된 구조 속에서 점차 ‘금융 권력’의 실체로 변질되었다.
교회의 자산은 신자들의 신앙과 헌신에 기반한다. 그런 점에서 자금 운영의 투명성과 윤리성은 단순한 행정의 문제가 아닌 신학적 정당성과 교회 공동체에 대한 책임성의 문제다.
■ 역사 속 반복된 부패 사례들: 거룩함과 현실의 괴리
• 마피아 자금과의 유착 (1970년대)
이탈리아 금융업자 미케레 신도나와의 협력은 단지 경영 실패가 아닌, 교회의 자금이 조직범죄와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 암브로시아노 은행 붕괴 (1982년)
교황청이 은행 보증을 통해 실질적 개입을 했던 이 사건은, 자금 운용의 윤리적 책임을 교회가 어디까지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묻게 한다.
• 나치 약탈 재산 관련 의혹 (1999년)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제기한 바티칸 은행 관련 소송은, 교회가 역사적 정의 실현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왔는지를 성찰하게 한다.
• 자금세탁 조사와 은폐 시도 (2010년~2021년)
수차례에 걸친 자금세탁 정황과, 은행장 및 고위 성직자의 유죄 판결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 교회의 권위, 왜곡된 성역성과 법 외적 지위
치외법권과 외부 감사 차단은 종교 제도의 고유성 보호라는 명분 아래 윤리적 감시와 책임의 회피 수단으로 작용해 왔다. 가톨릭 교회의 자기정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에서, 신학적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점점 커져갔다.
내부 고발은 묵살되었고, 재정 운영의 기본인 연례 보고서조차 2013년 전까지 단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신자 공동체에 대한 무책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개혁의 시도와 지속되는 의혹
프란치스코 교황의 즉위 이후, 바티칸 은행의 개혁과 투명성 강화를 위한 조치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신학적 회개(metanoia)와 공동체 중심의 청빈 정신으로 연결되었는지는 의문이다. 폐쇄된 계좌의 자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여전히 불분명하고, 최근까지도 부동산 스캔들이 이어지는 등 청렴성 회복에 대한 교회의 설득력은 약한 상태다.
■ 신앙의 공동체가 던지는 질문
가톨릭 신앙은 정의와 공동선(common good)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그러나 바티칸의 재정 운영과 그에 대한 책임 회피는 이러한 가치와 어긋난다. 교회가 진정한 영적 공동체로서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단지 제도적 정비를 넘어서 신학적 회개와 구조적 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 결론: 권력 구조 속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려면
가톨릭 교회는 수세기 동안 신앙의 중심으로서 인류의 도덕성과 정신세계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금융 부패는 그 권위의 뿌리를 흔드는 내적 균열이다. 종교는 신성하되, 제도는 비판받아야 한다. 교회가 스스로를 정화하지 않는다면, 그 도덕적 권위는 더 이상 성스럽지 않은 권력 구조로 비춰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