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는 오랜 세월 동안 복음 전파를 사명으로 삼아 왔다. 그러나 이 사명은 종종 정치적, 제국주의적 권력 구조와 결합되며, 토착민에 대한 폭력과 문화 말살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이어진 유럽의 식민 제국주의 과정에서, 교황청과 가톨릭 성직자들은 단순한 동반자 이상으로, 정복의 신학적 정당화를 제공하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윤리적, 도덕적 반성과 회복의 과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 식민 정복의 신학화: ‘발견의 원칙’과 교황 칙서의 역사적 영향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착 직후, 교황청은 일련의 칙서를 통해 유럽 국가들에게 식민 정복의 종교적 권위를 부여했다.
니콜라오 5세의 Dum Diversas(1452), Romanus Pontifex(1455), 그리고 알렉산데르 6세의 Inter Caetera(1493)는 이교도의 땅을 점유하고 그 주민을 노예화하는 것을 신학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정복 행위에 성스러운 외피를 씌웠다.
이러한 문서들은 ‘발견의 원칙(Doctrine of Discovery)’이라는 국제법적 관행으로 제도화되었고, 그 여파는 단지 16세기 식민지 건설에 그치지 않았다. 19세기 미국 대법원 역시 이 원칙을 근거로 토착민의 완전한 토지 권리를 부정했다. 이는 가톨릭교회가 단지 영적 권위자가 아니라, 세계 지배 질서 재편의 한 축이었음을 시사한다.
■ 선교와 폭력의 이중성: 신앙 강요와 문화 파괴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정복은 단순한 정치적 침략이 아니었다. 성직자들은 정복자들과 동행하여, ‘신앙 전파’라는 이름으로 토착 신앙과 문화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데 앞장섰다.
원주민에 대한 개종은 폭력과 협박을 동반했고, 거부는 곧 ‘이단’ 혹은 ‘불신앙’으로 간주되어 체벌과 학살의 명분이 되었다.
물론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와 같은 성직자는 이러한 잔혹성을 고발하고 인간 존엄성을 옹호했지만, 그와 같은 소수의 양심적 저항은 구조적 폭력 속에서 주류의 목소리가 되지 못했다.
가톨릭교회는 당시 유럽 제국주의의 윤리적 면죄부를 제공했고, 성직자 일부는 노예제도를 묵인하거나 직접 활용하는 데에도 가담했다.
■ 기숙학교와 제도적 동화 정책: 신앙의 이름으로 지워진 정체성
19~20세기에 이르러 식민주의는 새로운 양상으로 이어졌다. 북미 원주민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기숙학교 제도는 종교적 동화 정책의 극단적 형태였으며, 그 운영에 가톨릭교회는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아이들은 가족과 격리되고, 언어와 전통, 신앙을 잃도록 강요받았으며, 신체적·성적 학대에 노출되었다.
2021년 캐나다 기숙학교 부지에서 발견된 215명의 아동 유해는, 단지 물리적 죽음의 흔적이 아니라, 제도적 침묵과 외면 속에 축적된 역사적 죄의 실체를 드러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2년 공식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교회는 실질적인 배상과 피해자 회복에 있어 구체적인 조치를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윤리적 회개와 제도적 정의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 회개를 넘어서: 기억과 책임, 그리고 치유의 과제
오늘날까지도 캐나다와 미국 등지의 원주민 공동체는 교황청에 15세기 칙서의 공식 철회와 토지 반환, 실질적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단지 과거에 대한 사과를 넘어서, 제국주의적 신학 유산의 지속적 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다.
2019년 아마존 시노드를 비롯한 최근 교회의 논의는 과거의 폭력을 반성하고, 지역 문화와 신앙을 존중하는 사목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지만, 이는 아직 초기적 시도에 불과하다.
교회의 도덕적 권위는 단지 신학적 선언으로 회복될 수 없다.
진정한 회개는 기억, 책임, 치유라는 세 가지 축을 통해 실천적 정의로 연결되어야 하며, 피해자의 관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 결론: 교회의 자기반성과 종교학의 책임
가톨릭교회의 원주민에 대한 폭력과 동화 정책은 단지 역사적 ‘오류’가 아니다. 그것은 신학적 권위가 정치적 권력과 결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파산의 전형이다.
종교학은 이러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종교 제도의 구조적 위험성을 분석하고, 오늘날의 신앙 공동체가 취해야 할 비판적 성찰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신앙은 구원의 메시지를 전할 책임과 동시에, 그로 인해 상처 입은 자들을 치유할 윤리적 의무를 지닌다.
그 책임을 외면할 때, 종교는 더 이상 성스러운 것이 아니라 폭력의 공범이 될 뿐이다.